리더경제 【특집 기획|권력의 방, 역사의 순간 ①】 대통령 옆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이승만과 네 부통령, 제1공화국 12년의 선택

이시영·김성수의 사임에서 야당 부통령 장면의 당선까지…대통령과 달랐던 선택

농지개혁·한미동맹의 성과와 함께 살펴야 할 개헌의 강압과 국가폭력

부통령 당선인 이기붕은 왜 취임하지 못했나…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의 결말

리더경제 
 


【특집 기획|권력의 방, 역사의 순간 ①】 

대통령 옆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이승만과 네 부통령, 제1공화국 12년의 선택 

이시영·김성수의 사임에서 야당 부통령 장면의 당선까지…대통령과 달랐던 선택 

농지개혁·한미동맹의 성과와 함께 살펴야 할 개헌의 강압과 국가폭력 

부통령 당선인 이기붕은 왜 취임하지 못했나…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의 결말 

리더경제 윤수연 기자 

2026년 10월 11일 


첫 번째 부통령은 사임서를 냈다. 두 번째 부통령도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며 자리를 내려놓았다. 

세 번째 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사라졌다. 네 번째 부통령은 대통령과 다른 정당의 후보였다. 

그리고 다음 부통령이 될 것으로 발표된 사람은 끝내 취임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도 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옆자리의 역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야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임과 경쟁, 헌법의 변화와 시민의 저항이 그 자리를 통과했다. 

이승만과 네 부통령이 함께했던 제1공화국의 약 12년. 대통령 옆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따라가면, 국가의 출발과 권력의 한계를 함께 읽을 수 있다. 

〈권력의 방, 역사의 순간〉은 대한민국 근현대 지도자들의 선택을 기록으로 살펴보는 연재다. ‘방’은 실제 집무실이나 사적 대화를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적 결정과 그 결과를 들여다보는 서술 장치다. 

 


■ 첫 번째 문 — 함께 출발했지만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당시 두 직위는 국민의 직접투표가 아니라 국회에서 선출됐다. 

두 사람에게는 독립운동이라는 공통의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지도자들이 해방 이후 국가 운영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새 정부가 마주한 과제는 컸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사회에 제도를 정착시켜야 했고, 분단과 냉전 속에서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국민에게는 정치적 구호만큼 생계와 땅, 교육의 문제가 절실했다. 

1949년 제정된 농지개혁법은 이러한 생활의 기반을 바꾸는 중요한 정책이었다. 1950년 개정과 시행령 마련 등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정부가 대상 농지를 유상으로 매수하고, 경작 농민에게 상환 조건을 붙여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소작농이 자기 땅을 경작할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였다. 

다만 농지개혁을 한 지도자의 결단만으로 설명하면 제헌헌법의 원칙, 국회의 심의, 행정조직의 집행과 농민의 부담을 놓치게 된다. 상환 부담과 영세한 경작 규모, 전쟁에 따른 혼란도 남았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정부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진 시기에 대통령과 부통령 사이의 균열도 드러났다. 
 



■ 두 번째 문 — 이시영은 왜 사임서를 냈나 

1951년 5월 9일 이시영은 국회에 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시영이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했으며, 국정 혼란과 사회 부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고 설명한다. 

독자에게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이시영은 부통령직을 떠난 뒤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1952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대통령 옆자리를 내려놓았던 사람이 대통령직을 놓고 경쟁한 것이다. 

이 선택을 두 사람의 개인적 불화로만 읽기는 어렵다. 독립 이후 어떤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 정부의 잘못에 고위 공직자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는 문제가 함께 있었다. 

이시영의 사임이 정부의 방향을 곧바로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고위 공직자의 반대가 공개적인 기록으로 남았다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의 기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지위에 오른 순간만이 아니다. 그 지위를 내려놓기로 한 순간도 리더십을 평가하는 장면이다. 

 


■ 세 번째 문 — 김성수의 사표, 공적과 책임을 함께 읽다 

1951년 5월 김성수가 제2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의 재임도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1952년 전시 수도 부산에서는 대통령 선출 방식을 둘러싼 충돌이 벌어졌다.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던 제도 아래에서 이승만의 재선 가능성이 불확실해지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추진됐다. 

국회에서는 내각책임제 개헌 움직임도 나타났다. 헌법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가 현직 대통령의 재선 문제와 맞물린 것이다. 

부산정치파동 과정에서 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의원들이 연행됐다. 5월 26일에는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버스가 헌병대로 끌려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성수는 이에 항의하며 5월 29일 부통령직 사임서를 냈다. 

초대에 이어 두 번째 부통령도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며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다. 대통령 옆자리는 권력 내부의 이견을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다만 이 사건만으로 김성수의 생애 전체를 민주주의 수호자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 가운데에는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절차에서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된 활동이 있다. 

헌정 질서를 흔드는 탄압에 반대한 행위와 식민지 시기의 협력 행적은 각각 평가해야 할 기록이다. 한 시기의 공적이 다른 시기의 책임을 지우지는 않는다. 

인물을 조명하는 기사는 기념할 장면만 고르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 다른 평가를 요구하는 기록을 함께 읽는 작업이다. 

 


■ 네 번째 문 — 함태영의 재임 중, 안보와 헌법이 바뀌었다 

1952년 7월 발췌개헌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같은 해 8월 5일 선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함태영이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함태영은 법조인과 목회자로 활동했고 3·1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1956년까지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그의 재임 중 국가의 안보체제와 권력 구조를 바꾸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53년 10월 1일 서명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후 대한민국 안보체제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양국의 비준 절차를 거쳐 1954년 11월 18일 발효됐다. 

전쟁 이후의 안전을 장기적인 제도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승만 정부 외교의 주요 성과다. 그 과정에는 이승만의 협상과 요구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판단, 양국 외교당국의 활동도 함께 작용했다. 

한편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규칙은 약해졌다. 

1954년 개헌은 당시 대통령에게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변화였다. 

당시 재적 국회의원은 203명, 개헌안 찬성표는 135표였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을 충족하려면 최소 136표가 필요했다. 

11월 27일 표결에서는 부결이 선포됐다. 그러나 자유당은 203명의 3분의 2인 약 135.333명을 반올림하면 135명이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틀 뒤 부결 선언은 번복됐다. 
 


사사오입개헌이다. 

한 표의 부족을 받아들이는 대신 통과 기준의 해석을 바꾼 사건이었다.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집권자의 필요에 맞춰 적용됐다는 문제가 남았다. 

이 개헌은 대통령이 궐위되면 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부통령 자리는 대통령의 후계 구도와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됐다. 

다만 함태영의 재임 중 일어난 사건을 모두 그의 직접적인 결정으로 돌릴 수는 없다. 특정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과 개별 정책·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구분해야 한다. 

 


■ 다섯 번째 문 — 대통령은 자유당, 부통령은 민주당 

1956년 5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은 이승만, 부통령은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됐다. 

오늘날 독자에게는 낯선 결과다.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은 별도로 선출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가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장면의 당선은 집권 세력이 대통령직을 유지했다고 해서 유권자의 지지를 모두 확보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부통령은 별도의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얻은 정치인이었다. 특히 대통령이 궐위되면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리는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같은 해 9월 28일 장면은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총격을 받아 손을 다쳤다. 

현직 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폭력이었다. 사건의 배후와 책임은 이후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됐다. 이를 기사화할 때는 확인된 행위와 판결, 별도로 제기된 주장을 구분해야 한다. 

장면의 지위는 ‘대통령 아래의 2인자’라는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대통령과 다른 정치적 기반을 가진, 국민이 직접 선출한 부통령이었다. 
 



■ 여섯 번째 문 — 이기붕은 왜 취임하지 못했나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정권 전체의 위기로 번졌다.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선거 전에 사망하면서 이승만은 단독 후보가 됐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 이기붕과 민주당 장면이 경쟁했다. 

1956년 장면에게 패했던 이기붕의 당선은 자유당 정권에 중요한 과제였다. 고령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대통령직 승계 규정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쟁의 방식이었다. 

행정기관과 경찰을 동원한 선거 개입, 사전 투표함 채우기, 공개투표와 개표 조작 등 광범위한 부정이 벌어졌다. 

선거 뒤 이기붕은 부통령 당선인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민의 저항 앞에서 정당성을 잃었다. 

여기서는 직함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기붕은 부통령으로 취임하지 않았다. 당선인으로 발표됐지만 4·19혁명과 정권 붕괴 속에서 취임에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제1공화국에서 실제 재임한 부통령은 이시영·김성수·함태영·장면 네 명이다. 이기붕을 다섯 번째 부통령으로 소개하면 실제 재임 이력과 어긋난다. 

부정선거를 이기붕 개인만의 문제로 좁힐 수도 없다. 국가기관이 동원된 선거 부정과 시민에 대한 폭력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묻게 했다. 
 



■ 마지막 문 — 권력의 방향을 바꾼 것은 시민이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는 선거 당일 마산에서 터져 나왔다. 

1960년 4월 11일 시위 과정에서 실종됐던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사건은 시민의 분노를 크게 확산시켰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와 귀교 과정에서의 습격 사건이 이어졌다. 다음 날에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확대됐고,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4월 25일에는 대학교수들도 거리로 나왔다.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27일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 

대통령과 부통령의 자리에서 이어지던 권력의 향방을 바꾼 힘은 집무실 밖에서 나왔다. 

시민에게 선거는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이 제대로 집계되는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가, 권력자가 잘못에 책임지는가의 문제였다. 

이 시대를 평가할 때 정부 수립과 농지개혁, 안보체제 구축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개헌 과정의 강압과 부정선거, 국가폭력도 기록해야 한다. 

정부 수립 전후에 걸쳐 이어진 제주4·3의 민간인 희생 역시 빠뜨릴 수 없다. 2003년 확정된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인정했다. 

사건의 시기와 개별 행위의 책임은 구체적인 기록에 따라 구분하되, 정부의 국민 보호 책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과와 책임을 함께 기록하는 이유는 서로를 상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의 결정이 국민의 삶에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 리더경제의 시선 — 옆자리에 누가 있었는가보다 중요한 질문 

이승만과 네 부통령의 기록에는 서로 다른 선택이 남아 있다. 

이시영은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며 사임했다. 김성수는 국회의원 탄압에 항의하며 자리를 내려놓았다. 함태영의 재임 중에는 안보의 기반이 마련되는 한편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사라졌다. 장면은 야당 후보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뒤이어 당선인으로 발표된 이기붕은 취임하지 못했다. 

대통령 옆자리의 역사는 한 사람의 성격이나 두 사람의 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선출 방식과 승계 규정, 의회의 역할과 시민의 권리가 함께 작용했다. 

리더경제는 이 기록에서 지도자의 성과와 함께 권력을 제어하는 제도의 중요성을 읽는다. 고위 공직자의 사임과 반대가 있었지만 장기집권과 선거 부정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에는 시민의 행동과 희생이 정권의 지속을 멈췄다. 

그래서 질문은 ‘누가 대통령 옆에 있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권력이 규칙을 어겼을 때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는가.
그 이의는 실제로 권력을 멈출 수 있었는가.
그 과정에서 국민은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제1공화국의 마지막 장면에는 대통령의 사임서가 있다. 그 앞에는 거리로 나온 시민과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다. 

권력자의 방을 기억할 때 그 방 밖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다음 회에서는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의 제2공화국을 살펴본다. 의원내각제 아래에서 권력은 어떻게 나뉘었으며, 그 체제는 왜 5·16군사정변으로 끝났을까. 


 

자료출처 

국가기록원
「헌법이야기」·「국무회의록의 재발견」·「기록으로 보는 4·19혁명」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시영」·「김성수」·「장면」·「장면 부통령 저격사건」·「농지개혁법」·「토지개혁」 

외교부
한미상호방위조약 설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3·15의거·4·19혁명 사료 

제주4·3평화재단
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 기록 


작성 기준 및 편집 안내 

작성 기준: 2026년 10월 11일 

편집 안내: ‘방’은 역사적 기록과 선택을 살펴보는 서술 장치다. 실제 관저 방문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적 대화·심리를 재현한 기사가 아니다. ‘리더경제의 시선’은 확인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편집적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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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11 21:48 수정 2026.10.1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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