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법학박사는 현재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시민의 예산 참여와 재정민주주의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이 글은 위원장으로서 시민참여예산사업의 심의·선정과 위원회 운영에 참여하면서 느낀 제도적 한계와 개선과제를 바탕으로, 시민참여예산제가 실질적인 시민주권의 제도로 발전하기 위한 방향을 제언한 것이다.
지난 8월 27일 서울시청 본관 대회의실에서 2026년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총회가 열렸다. 필자는 시민참여예산위원장으로서 총회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이 제안하고 위원들이 숙의한 사업의 최종 의결 절차를 맡았다.
올해 시민참여예산 공모에는 모두 539건의 사업이 제안됐다. 각 분과위원회의 검토와 심의, 시민투표를 거쳐 47개 사업, 약 258억 원 규모의 사업이 총회 의결 대상에 올랐다. 필자는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 제16조에 따른 의결 절차를 진행했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47개 사업을 2027년도 시민참여예산사업으로 최종 선정했다. 이 사업들은 앞으로 서울시 예산안에 반영된 뒤 서울시의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는 절차를 밟는다.
총회를 진행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시민참여예산제는 과연 시민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권한을 주고 있는가.시민이 사업을 제안하고 심사에 참여하며 투표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제도가 10년 이상 운영된 지금은 참여의 양보다 참여의 질, 절차의 운영보다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시민참여예산은 ‘시민이 예산을 공부하는 제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민참여예산제의 법적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는 「지방재정법」 제39조와 같은 법 시행령 제46조를 근거로 서울시의 예산과정에 시민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예산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이며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재정운영의 공개를 통한 재정민주주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명시하고 있다.
시민참여예산위원회의 역할도 단순한 공모사업 심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례 제13조를 보면 중장기 예산과 대규모 투자사업을 포함한 예산과정에 의견을 제출하고, 분과위원회에서 심의·조정한 사업을 선정하며, 예산편성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조항은 제6조이다. 시민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범위를 일부 시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한하지 않고 “해당 연도의 전체 예산과 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참여예산위원회는 몇몇 시민제안사업을 골라내는 심사위원회에 머무는 기구가 아니다. 서울시의 방대한 재정이 어디에, 왜, 얼마나 배분되는지를 시민의 눈으로 살펴보고 의견을 제시하는 재정참여기구라는 뜻이다.
문제는 조례가 부여한 역할과 실제 운영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몇 가지 개선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운영위원회를 시민참여예산의 실질적인 중심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조례 제18조는 운영위원회가 위원회와 분과위원회의 운영 방향 및 의견을 조정하고, 위원장이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다룰 수 있도록 규정한다. 운영위원회에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분과위원장과 분과 간사가 참여한다.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시장의 요구가 있을 경우 회의를 소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는 사실상 시민참여예산위원회의 핵심적인 조정기구가 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특정 안건이나 일정이 있을 때만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원칙적으로 월 1회 정도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민제안사업 심사뿐 아니라 서울시 예산편성 방향, 분과별 활동 상황, 시민의견 반영 정도, 제도 개선, 예산교육, 기금 운용 등 주요 사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도 회의장소 제공, 자료 작성, 일정 조정, 관계 부서 참석 등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조례 제24조 역시 시장이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회의장소와 사무처리 등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가 움직여야 할 때 행정이 회의를 준비하는 구조를 넘어, 위원회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행정이 이를 지원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위원들의 수당과 활동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
시민참여예산위원은 명예직에 가깝지만 상당한 책임을 부담한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생업을 조정하고, 사전에 사업자료를 검토하며, 때로는 현장을 살펴보고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까지 검토해야 한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이유로 이러한 시간과 전문성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조례 제24조 제3항은 위원이나 전문가 등이 위원회 등의 회의에 참석하거나 공무로 출장한 경우 「서울특별시 위원회 수당 및 여비 지급 조례」에 따라 예산의 범위에서 수당과 여비, 그 밖에 필요한 경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제는 실제 활동시간과 자료검토 부담 등을 고려해 수당 수준이 적정한지 검토해야 한다. 특히 장시간 회의, 전문적인 사전검토, 현장확인 등 추가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적정한 활동비 지급은 시민참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과 소득에 관계없이 다양한 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참여의 형평성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위원 임기를 2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현행 조례 제14조에 따르면 시민참여예산위원의 임기는 위촉된 날부터 다음 해 1월 말까지이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실제 위촉 시점을 고려하면 위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다. 처음 참여하는 시민은 서울시 재정구조와 예산편성 절차, 분과별 사업, 심사기준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제도를 이해하고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임기가 끝나는 구조라면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기 어렵다.
따라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운영 사례도 비교해 위원 임기를 2년으로 하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장기 재임에 따른 폐쇄성을 막기 위해 일정 비율의 신규 위원을 매년 충원하는 방식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시민참여는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 매년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 대표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신규 참여와 경험 축적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넷째, ‘전체 예산과 기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조례는 시민의견 제출 범위를 해당 연도의 전체 예산과 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위원이 서울시 전체 예산의 구조와 주요 사업을 충분히 이해할 기회는 제한적이며, 특히 기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 문제는 위원 개인의 공부 부족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조례 제8조는 시민참여예산 운영계획에 시 예산에 대한 설명·홍보·토론 활동과 교육계획 등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고, 제12조도 시민참여 활성화를 위해 예산에 대한 설명·교육·홍보와 토론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서울시는 위원들에게 예산총칙, 세입·세출 구조, 주요 정책사업뿐 아니라 기금별 설치목적, 조성 규모, 운용계획, 집행률, 성과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별도의 재정 브리핑을 제공해야 한다.
정보가 없는 참여는 형식적 참여가 되기 쉽다. 시민에게 의견을 요구하려면 먼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다섯째, 회의 공개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시민참여예산제의 생명은 투명성이다. 시민의 세금을 다루는 위원회가 시민에게 자신의 활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서울시 조례는 이 점을 상당히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21조에 따르면 위원회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며,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의 종료 후 7일 이내에 개최일시, 심의안건, 출석위원 성명, 발언내용, 결의내용 등을 담은 회의록을 서울시 누리집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조례상 의무이다.
총회뿐 아니라 운영위원회와 각종 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도 조례의 취지에 맞게 회의록 공개가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회의자료, 회의결과, 사업별 심사과정과 후속조치 등을 하나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회의를 공개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여섯째, 위원장에게 조례가 부여한 역할이 실제 운영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조례 제15조는 매우 분명하다.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위원회의 업무를 총괄한다. 또한 위원장은 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한다. 제16조에서는 예산편성안의 최종적인 심의·조정이 필요하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총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상의 ‘업무 총괄’이 실제 운영에서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고 준비된 안건을 의결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물론 시민참여예산위원장은 행정조직의 지휘자가 아니다.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인사·행정상의 지휘권을 갖는 자리도 아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행정적 지휘권의 확대라기보다 위원회 운영에 관한 실질적인 의제설정권과 사전협의 구조의 강화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연간 운영계획과 주요 회의안건, 제도 개선사항, 시민의견 수렴방식 등을 결정할 때 위원장과 부위원장, 운영위원들이 사전에 충분히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이 계획을 만든 뒤 위원회가 추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원회와 행정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논의하는 협치구조가 필요하다.
시민참여예산의 다음 단계는 ‘시민제안사업’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난 8월 27일 총회에서 필자는 위원들에게 시민참여예산제가 “시민들이 직접 서울시 예산 사업의 제안, 심사, 선정 등 예산 과정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시민참여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 두 달여 동안 위원들이 시민 제안사업을 심도 있게 검토해 47개의 시민투표 대상 사업을 선정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제 그 의미를 한 단계 확장해야 한다.
시민참여예산제가 몇백억 원 규모의 시민제안사업을 선정하는 데 집중한다면 서울시 전체 재정에 대한 시민참여라는 본래의 취지는 충분히 구현되기 어렵다. 시민제안사업은 중요하지만 시민참여예산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서울시 전체 예산과 기금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중장기 재정계획과 대규모 투자사업에도 시민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조례가 이미 시민참여예산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시민참여예산위원회가 행정의 자문기구에 머물 것인지, 서울시 재정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시민대표기구로 발전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제도 운영에 달려 있다.
운영위원회의 정례화, 위원 활동지원의 현실화, 임기의 합리적 연장, 예산·기금 정보의 충분한 제공, 회의록 공개의 철저한 이행, 그리고 위원장과 운영위원회의 실질적인 참여 확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참여예산은 결국 시민의 세금을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도이다.
시민에게 참여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재정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주고, 충분히 토론하게 하고,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다시 시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선순환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시민은 예산의 구경꾼이 아니라 서울시 재정의 주체가 된다.
지난 총회에서 의사봉을 잡으며 필자가 느낀 책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제의 다음 10년은 ‘얼마나 많은 시민이 참여했는가’보다 ‘시민의 참여가 실제 예산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그것이 시민참여예산제가 지향해야 할 다음 단계이며, 서울이 재정민주주의의 모범도시로 나아가는 길이다.
▷법학박사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서울시 강남구 결산검사위원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저서> 「주민참여예산의 이해와 운영 전략」 (2026,공저)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