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국회는 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을까.
답은 분명하다. 치유농업을 단순한 농업이나 외식산업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미래 융합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치유농업과 치유서비스의 연구개발,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개발, 산업기반 조성 및 보급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권고가 아니다.
국가가 법률로 육성해야 할 산업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산업의 품질기준을 마련하려 하자 돌아온 답은 "기존 외식서비스와 중복된다"는 판정이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정부는 치유서비스 산업을 키우라고 하고, 표준 심사는 일반 음식서비스와 같으니 별도의 표준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가.
치유음식서비스는 일반 외식서비스가 아니다.
일반 외식서비스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치유음식서비스는 치유 효과가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여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회복과 증진을 지원하는 전문 치유서비스다. 이용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한 식단 설계, 치유 효능을 고려한 식재료 선정, 치유프로그램과의 연계, 치유 효과의 관리, 전문인력 운영 등이 핵심이다.
이러한 요소는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외식서비스와는 목적도, 기능도, 운영체계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제공한다'는 공통점만으로 중복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법률이 육성하려는 치유서비스의 독자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표준화 제도의 존재 이유다.
표준은 새로운 산업을 기존 산업에 억지로 편입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그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품질기준과 운영기준을 마련하여 산업의 신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표준화의 본래 목적이다.
그런데 치유음식서비스가 일반 외식서비스와 일부 절차가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적인 표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융합서비스도 독자적인 표준을 만들 수 없게 된다.
학교급식도 음식을 제공한다.
병원급식도 음식을 제공한다.
군급식도 음식을 제공한다.
노인급식도 음식을 제공한다.
의료영양서비스도 음식을 활용한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 일반 외식서비스와 중복인가.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다.
서비스 대상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운영체계가 다르면 별도의 기준이 필요한 것이 표준화의 기본 원칙이다.
제품 분야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너무나 당연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모두 '볼트'라는 동일한 제품군이라도 항공용 볼트와 선박용 볼트는 요구되는 성능과 안전기준이 다르면 별도의 표준으로 인정된다.
같은 볼트는 인정하면서, 전혀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가진 치유서비스는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판단 기준은 과연 일관성이 있는가.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 판단이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의 입법 취지와 충돌할 가능성이다.
법률은 치유서비스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라고 한다.
산업을 육성하려면 전문성에 맞는 품질기준이 필요하다.
품질기준을 마련하려면 표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표준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면, 법률이 지향하는 산업 육성은 무엇으로 뒷받침할 것인가.
정책은 육성을 말하고, 제도는 제동을 거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선례로 굳어진다면 피해는 치유음식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디지털헬스케어, 웰니스, 치유관광, 농촌융복합산업 등 다양한 융합서비스 역시 기존 산업과 일부 절차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적인 표준 제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추진하는 미래산업 정책과 표준화 정책이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산업 현장에는 "새로운 산업은 육성하되 새로운 기준은 만들 수 없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우려가 있다.
표준은 산업의 발목을 잡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법률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라고 명령하는데, 표준제도가 기존 산업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기준의 마련을 막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산업과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번 치유음식서비스 단체표준의 중복성 판단은 단순히 하나의 단체표준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대한민국 표준화 제도가 법률이 육성하는 미래산업을 지원하는 제도인지, 아니면 기존 산업의 틀만을 고수하는 제도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중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법률의 목적, 국가 정책, 서비스의 전문성, 그리고 표준화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실질적인 판단이다.
국가가 법률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산업이라면, 그 산업에 맞는 표준을 마련할 기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는 길이며, 미래산업을 위한 표준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류길홍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품질진흥원(KSQ) 본부장
한국공공정책신문 이사


